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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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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3.18 『맹자』를 읽다가
  2. 2015.01.08 인문학이 위험하다!

고전을 읽다 보면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뜬금포'가 종종 등장한다.

그제부터 소화불량에 걸린 부분은 『맹자孟子』「등문공장구 상滕文公章句 上」으로, 성선性善에 대한 맹자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어서 자주들 인용하는 구절이다.


滕文公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등나라 문공이 세자 시절에 초나라로 가려고 송나라를 지나다가 맹자를 만나셨다.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맹자가 인간 본성은 선함을 말하며 말끝마다 요순을 (예로써) 말하셨다.

世子自楚反, 復見孟子.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며 다시 맹자를 만나셨다.

孟子曰, “世子疑吾言乎? 夫道一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成覵齊景公曰, ‘彼, 丈夫也, 我, 丈夫也, 吾何畏彼哉?’ 

성간이 제나라 경공에게 ‘그도 장부요, 저도 장부인데, 제가 왜 그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사람의 가능성은 같다]

顔淵曰, ‘舜, 何人也? 予, 何人也? 有爲者亦若是.

안연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자 함이 있는 자는 또한 이와 같습니다.’ 라고 하였고, [누구나 분발하면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

公明儀曰, ‘文王, 我師也, 周公豈欺我哉? 

공명의가 ‘문왕이 나의 스승인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주공께서 ‘(아버지인) 문왕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였는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라고 공명의가 말했다.]

今滕,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 書曰, ‘若藥不暝眩, 厥疾不瘳.’”

지금 등나라는 이래저래 따지면 사방 50리에 이르니 이만하면 좋은 나라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서경에서 ‘만약 약이 눈을 어둡게 하고, 또 어지럽게 하지 못한다면[명현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궁금한 점은 우선, 公明儀曰, ‘文王, 我師也, 周公豈欺我哉?’ (위의 줄친 구절) 에 대한 나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주희도 이색李穡도 나와 견해가 같은 듯하다.


周公師文王 주공은 문왕을 스승이라 했는데 

豈欺公明儀어찌 공명의를 속였으리요? 

(『목은집牧隱集』에 수록된 시 「고풍古風」중)


저 해석에 의하면, 주공은 자기 아버지인 문왕을 자기의 스승이라고 말한 것이다.

아버지와 스승을 동일하게 본 것이 옳은 해석일까?

자신의 멘토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대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을 보면, 주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저 구절의 맥락은 무엇이란 말이냐? ㅜ.ㅜ

고전을 읽다 보면, 중간 중간 '얜 왜 등장했지?', '그래서 뭘 얘기하려는 거지?' 갑자기 멍해지는 대목이 나온다.

옛분들은 공부에서 소화시킬 구멍을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 천천히 드시어요. 체하실까 저어되어 버들잎을 띄웠사옵니다.'


추신. 누구든 맥락 좀 알려주세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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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채원

요즘 동학同學들과 논어論語를 공부하고 있다.

그 사이에 주워들은 것이 좀 생긴 덕인지 2012년의 강독 때보다, 무식한 오채원을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

공자孔子와 제자들 간의 대화, 이에 대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해석,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철학, 한자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접하노라면, 마치 슴슴한 천연발효 깜빠뉴를 씹는 것 같이, 재미 없으면서 재미지다.

2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동학들의 흥미로운 표정을 둘러보며 '대중강연에서 이 내용들을 풀어놓으면, 우리처럼 좋아들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다 갑자기 섬뜩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도피 중인지도 모르겠다.

시끄럽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성현의 정도正道에 대한 말씀을 듣다보면 유토피아에 와 있는 것 같다. 

게임, 도박, 음주처럼 인문학도 순간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게임, 도박, 음주와는 비교도 못할만큼 건전하지 않냐고?

그들은 양심의 저촉을 받으니, 취해 있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우리 마음 속에서 떳떳하게 작용하여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월감을 경계해야겠다.

세상이 인문학 열풍이라고 떠들어대니, 나같은 초학자初學者에게도 세종식 소통리더십을 위시한 인문학 강의의 요청이 늘고 있고, 때때로 강의장에서 강의 쇼퍼shopper들을 만난다.

'적당히 달달하게 가공했지만 그래도 인문학은 인문학이니까.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강의장에 앉기는)한 지식인 내지 문화인이다.'

이는 인문학과 공부의 의미를 잃은 태도이다.

고전 맛 좀 보았다고, 명품 걸친 졸부처럼 우쭐대지 말자.


공부에 책임을 져야겠다.

겪어 보니, 리더십을 공부한 사람이 그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를진데, 리더십 관련 책을 읽었다고 강의를 들었다고 연구를 한다고, 자신이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믿는 문제아들이 참 많더라.

리더십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리더인 척은 안 하니 차라리 낫다.

성현들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공부의 목적은 실행에 있다.

아는 것이 나라고 믿어, 공자와 나를, 세종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는 오만을 경계하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모든 이야기는 겉멋 든 인문학 초학자인 나의 양심선언 내지는 고해성사이다.
부디 어여삐 여겨주소서~


시문(詩文)을 읽는 공자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osted by 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