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92)
오채원연구소공감 (44)
방송 (18)
실록공감 - 나와 세종.. (49)
세종 유통분流通分 (14)
소통 강의노트 (12)
전문강사 포럼 (7)
삶.사람.생각 (19)
문화 공감 (28)
Total75,891
Today2
Yesterday71

'김치장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8.12 [ 실록공감 07_광해군과 음식로비 ]

[ 실록공감 07_광해군과 음식로비 ]


---------------------------------------------------------------------------

[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


효종孝宗의 사위인 정재륜鄭載崙이 궁궐을 드나들며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에는 세종대부터 효종대까지의 다양한 생활사가 적혀 있습니다. 그 중 광해군光海君에 얽힌 이야기를 한 토막 소개하고자 합니다.


광해군이 폐위廢位되어 유배됐을 때 따라간 궁궐의 계집종 중에서 성질이 사납고 교활한 자가 있었다. 정성껏 봉양하지 않으므로 광해가 꾸짖었더니, 계집종이 거친 소리로 말했다. “왕위에 있을 때에 여러 관청과 전국에서 매달 공물供物을 바쳤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염치없는 것들에게까지 찬거리를 요구하였습니까? 심지어 ‘김치 판서[沉菜判書]’니 ‘잡채 참판[雜菜參判]’이니 하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하여 벼슬을 구하거나 송사하는 자에게 뇌물을 요구해 민심을 크게 무너지게 했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잘못하여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여 고생시키고는 도리어 정성껏 받들지 않는다고 책망하니, 양심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하니, 광해군이 머리를 숙이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다만 혀를 찰 뿐이었다.


계해반정癸亥反正(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른 인조仁祖의 아들이 바로 효종이지요. 그 효종의 사위인 정재륜이 저자이므로 어쩌면 광해군에게 불리하게 기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록에도 광해군 때의 ‘잡채 판서(장관)’ 그리고 ‘더덕 정승(총리)’이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재륜의 사견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충李沖은 광해군 말년에 온갖 수단을 다 부려 임금에게 아첨하고 못된 비위를 맞추었다. 겨울철에는 반드시 땅 속에 큰 집을 마련해 놓고 그 속에다 채소를 심었는데, 새로운 맛을 취한 것이었다. 반찬을 매우 맛있게 장만해 아침저녁으로 올렸는데, 그로 인해 총애를 얻어 높은 품계에 올랐다. 그가 길에 오가면 비록 삼척동자라도 반드시 ‘잡채 판서’라 손가락질하면서 너나없이 침 뱉고 비루하게 여겼다. (광해군일기[중초본] 즉위년 12월 10일)


이충은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사관 왈: 왕은 식사 때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조롱하였다.

사삼 각로의 권세가 처음에 중하더니

잡채 상서의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

여기에서 각로는 한효순韓孝純을, 상서는 이충을 지칭하는 것이었다(한효순의 집에서는 사삼沙參(더덕)으로 밀병蜜餠(꿀떡)을 만들었고, 이충은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하였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1년 3월 5일)


당대의 풍자시에 의하면, 광해 초년에는 한효순이 더덕 꿀떡으로 임금의 총애를 입어 정승이 되었는데, 말년에는 이충이 잡채 덕분에 판서 자리에 올라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유배지에서는 모시는 노비마저 식욕에 충실한 광해군을 얕보았다는 기록까지 남은 것이지요. 실리외교를 추구했다는 평가와 동떨어진, ‘음식로비’에 약했다는 광해군의 이야기가 낯섭니다. 그런가 하면, 그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었기에 지존의 자리에서 누릴 만큼 누렸을 사람이 반했을까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잡채’가 현재의 형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흔히 먹는 잡채는 당면이 주재료인데요. 이 당면은 약 100년 전에야 우리 음식에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이며 17세기에 저술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잡채에는 당연히 당면이 들어가 있지 않겠지요. 이 책에 따르면 잡채는 ‘나물 모음’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이틀 후인 8/11이 말복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복날이라 생각하니, 상투적인 삼계탕 말고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요. 땀으로 배출된 무기질을 보충하고, 피로회복과 체온하강을 돕는 채소. 이 채소로 만든 잡채를 이번 복날 메뉴로 삼아볼까 합니다.


* 참고문헌 :

1.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2.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3. 동아일보, 2017-04-05, 「[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


(사진 : 동아일보)


Posted by 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