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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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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실록공감 34주 과정을 마쳤다.
그 수료식은 지난 1/30에 있었는데 이제야 포스팅한다.
마치 어린 시절에 핫도그 먹으며 소세지를 남겨놓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랄까.



당초 세종실록을 읽는 것뿐 아니라, 학습공동체의 경영 또한 '세종 방식'으로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욕심도 참 많았지;;;
덕분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매주매주 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지식을 전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나는 스스로의 장막에 갇혀버렸다.
마지막 날까지 나는 경청하지 않고 내 말에만 집중했다.
사실 이 반성은 매주 했는데, 끝까지 반복했던 점이 미안하다.


"경서(經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은 실용하기 위한 것이다. 경서와 역사기록을 깊이 연구해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차례로 살펴보면, 그것이 보여 주는 나라 다스리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쉽다. 그러나 실제 일에 당면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경서와 사서(史書)를 널리 찾아 읽었으나, 오히려 아직 능(能)하지 못하니,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종실록 7년 12월 8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선생을 어여삐 여겨주신 도반들께 감사드린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정성스럽게 머핀을 굽는 등 풍성한 잔치를 준비해주시고, 고심해 고르셨음이 역력히 느껴지는 선물들을 전해주시는데 눈물이 살짝.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진하게 전해주신 도반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회초년생 때 '몽블랑
은 성공의 상징'이라 듣고, 내가 구입할 생각만 했지, 이처럼 선물로 받고 보니 '성공'에 대한 깨우침이 크게 다가옵니다.
가르침 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조선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17C 경신대기근(1670술년-1671해년). 이때 인구의 1/10이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소 못 미칠 지 모르겠지만, 세종대에도 큰 기근이 세 차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세종 재위 26년 되던 해에 찾아온다.


'
나물만 먹은 낯빛'으로 들판을 뒤덮은 백성들.
굶주린 사람들이 흙을 파먹는다는 보고.
구휼의 미비를 임금께 고하여 견책을 받을까봐 길거리에 백성들을 못 나오게 막은 관리.


우연히 하늘의 재앙을 만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구제할 수 있다(세종 26/7/25), 즉 ‘하늘이 내리는 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 한다는 소신을 평소부터 밝혀왔던 세종.

그는 세법인 공법貢法을 손보고,
민간 구휼 창고인 사창법 社倉法의 도입을 논의하고,
치수를 위한 저수지 건설을 고려하고,
백성들의 일상에 영향이 가장 큰 공무원인 수령들의 정신교육 등을 실시한다.
세종에게는 위기가 (시스템 및 사람을 점검하고 혁신하는) 기회였다.


경신대기근 참고 기사 :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074538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361707



Posted by 오채원

'한국 최초의 거리 측량기'이며, 그 매커니즘이 영국에 287년 앞섰다는 기리고(차).

즉 이 반자동 수레형 거리 측량기는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추정되며, 토지측량과 그에 따른 합리적 세금부과, 토목공사, 지도 제작 등에 활용했다.

왕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으로 행행하니, 왕세자가 호종(扈從)하고, 종친과 문무 군신 50여 인이 호가(扈駕)하였다.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한남군(漢南君) 이어(李𤥽)로서 수궁(守宮)하게 하고, 이 뒤로부터는 종친들에게 차례로 왕래하게 하였다. 임금이 가마골[加麿谷]에 이르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행차에 처음 초여(軺輿)를 쓰고 기리고(記里鼓)를 사용하니, 거가(車駕)가 1리(里)를 가게 되면 목인(木人)이 스스로 북을 쳤다. (세종실록 23년 3월 17일)


*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TIiIlv2fvE



Posted by 오채원

지난 봄(2017.4.26)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내용.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사재개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을 보며, 대통령의 소통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에 여기에 다시 포스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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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TV토론에서, 다섯 명 중 두 명이 '닮고 싶은 지도자'로 세종을 꼽았다.

세종을 언급해서가 아니라, 언급한 이유에서 많은 차이가 보여 흥미로웠다.

한 사람은, 장영실의 등용을 닮고 싶은 이유로 들었는데, 스티브 잡스의 조선 버젼 같다.

그리고 소통리더십을 이야기했지만, 효과 검증의 채널로 백성을 설정하였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하나만 집중해야 했을 텐데, 이 두 이유를 모두 포기할 수 없었나보다.


이에 비해, 다른 한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했다.

공법貢法이라는 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여론 수렴을 말했다.

한 사람은 결과, 또 한 사람은 과정을 거론했다.

동일한 인물을 두고 논했지만 이렇게 다르다.


* 해당 영상 :

http://tv.naver.com/v/1633063


 


Posted by 오채원

지난 화요일에 세종 재위 21년의 기사를 함께 읽었다.
안개 속에서 즉위하고 인턴십을 거쳤던 이도李 씨는 10여 년간 줄줄이 성과를 내는 쨍한 하늘을 만났다.

집권 중반을 지나며 이제는 맑은 하늘 속에서 종종 구름을 보는 것 같다.
'건강도 성과도 예전 같지 않다'고 고백하는 세종, 그리고 '왜 예전처럼 의논하지 않냐'고 따지는 신하와 유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고한 물결을 느낀다.
앞으로 남은 10여 년은 어떤 하늘을 만날까.
다음주 화요일, [실록공감] 2기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세종을 만날까.

(그림 : 몽유금강산도 18, 작가 : 박일선)


Posted by 오채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젊어서 호화로우면 장성하여 교만하고, 젊어서 고생을 겪으면 커서 성취함이 있다."
[人少習豪華, 則壯而驕逸, 少涉艱苦, 則長而成就。]
(세종실록 21년 5월 4일)

옛사람들은 초년 출세出世, 중년 상처喪妻, 노년 빈곤貧困이 '인생의 3대 불행'이라고 하여, 젊은 시절의 성공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소시민인 내게는 무척 약오르는 말이지만ㅎㅎ
젊어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진 않다.


Posted by 오채원

어제는 [실록공감]에서 세종 재위 20년의 실록을 함께 읽었다.
고질병이 하나하나 더해져 스스로 노쇠해짐을 자각하며, 세자섭정 등 미래를 준비하는 세종.
긴 안목에서 근본을 곱씹는 그를 보고 있자니 논어 구절이 떠올랐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멀리 앞을 내다봄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이 생긴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이제 [실록공감] 2기가 2주 남았다.
3기는 어떠한 발전된 형태로 진행할 지, 그리고 '2017년 실록공감' 팀의 졸업(?) 이후는 어떻게 할 지 생각이 많다.
아울러 일, 공부, 사람과의 만남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는 어떤 시야로 임해야 할 지 떠올리자니 마음 속에 바람이 분다.



Posted by 오채원

예술감성단체여민 주최, 오채원연구소공감 주관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록공감]이 보도되었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세종의 철학을 공유하는 소통 프로그램'으로서 기능하도록, 그리고 세종이야기꾼들이 양성되도록, 더욱 열심히 연구하고 다사리하겠습니다.


* 해당 기사 :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207



Posted by 오채원

어제 실록공감에서는 세종 재위 16년을 다루었다.
매년 가뭄, 건강, 외교, 국방 등의 다양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급무와 선무를 구분하며 차근차근 성과를 내가는 그의 모습에 우리는 대견함과 부러움을 표했다.
이번에 접한 성과 중 하나는 자격루.
'스스로 치는 물시계[自擊漏]'라는 이름의 이 자동시계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제왕의 정치는 때를 조화하게 하고, 날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중함이 없고 -중략- 천년의 긴 세월은 일각(一刻, 15분)의 틀리지 아니함에서 비롯하고, 모든 공적의 빛남은 촌음(寸陰, 짧은 시간)을 헛되게 하지 아니하는 데에 말미암는 까닭으로, 역대의 성신(聖神)들이 하늘에 순응하여 나와서 다스리되, 여기에 삼가지 않음이 없었다. -중략- 우리 동쪽 나라도 옛 제도가 허술하더니, 크나큰 이 제도를 비로소 만드셨네. -중략- 보는 이가 감탄하네. 거룩할사, 이 제도는 하늘 따라 법 만드니, 천지조화 짝지어서 범위가 틀림 없네. 적은 시각 아껴 써서 모든 공적 빛났도다. 그 나라에 사는 백성 스스로 감화하여 어기지 아니하네. 표준을 세우고서 무궁토록 보이도다." 

(세종실록 16년 7월 1일, 자격루 제작의 취지)


안타깝게도 세종 당시의 제작품들은 모두 유실되었으며, 이후 중종 때 개량한 것이 덕수궁에, 2000년대에 남문현 교수님이 복원한 것이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책 소개!
세계적인 과학사가 조셉 니덤의 저작 《조선의 서운관》에는 자격루를 비롯한 조선 천문의기 및 시계의 세계사적 의의가 기록되어 있다.


Posted by 오채원

[ 실록공감 10_세종과 건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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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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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13년째 해인 1431년의 초가을. 세종이 고백합니다.


"내가 풍질風疾을 얻은 까닭을 경(비서 김종서)은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경복궁에 있을 때 한창 더운 여름철이었는데, 한낮에 잠시 이층에 올라가서 창문 앞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더니, 갑자기 두 어깨 사이가 찌르는 듯이 아팠는데 이튿날에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더니 4, 5일을 지나서 또 찌르는 듯이 아프고 밤을 지나매 약간 부었다. 이 뒤로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발작하여, 어떤 때는 2, 3일을 지나고, 또 어떤 때는 6, 7일을 거르기도 하여 지금까지 끊이지 아니하여 드디어 묵은 병(숙질)이 되었다. 30살 전에 매던 띠[帶]가 모두 헐거워졌으니 이것으로 허리둘레가 줄어든 것을 알겠다. 내 나이가 33세인데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의 터럭 두 가닥이 갑자기 세었으므로,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뽑고자 하기에, 내가 말리며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고 하였다. 나의 쇠약함과 병이 전에 비하여 날마다 더욱 심해진다." (세종실록 13년 8월 18일)


강직성 척추염(척추관절염)으로 추측되는 ‘풍질’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몸이 찌르듯이 아프고, 허리띠 구멍이 몇 개나 줄어들 만큼 살이 빠진데다, 갑자기 흰 머리가 생겨서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30대 초반의 그는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그는 13년간 한 국가를 책임지느라 ‘24시간이 모자라’게 살아온 걸요.


(세종은) 매일 사야(四夜, 오전 1-3시)면 (기상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輪對를 행하고, 다음 경연經筵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세종실록 32년 2월 17일)


위의 기사처럼, 세종은 깜깜한 새벽에 기상해서는 오전부터 회의, 보고, 면담 등 업무의 연속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게다가 세종 13년 당시,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는 조선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 위험성을 내포했고, 신하들은 뇌물 커넥션과 뒷배 봐주기 등 각종 비리로 얽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서라는 작자마저 그가 왜 아픈지 모르니, 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한 남자는 참 외롭습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국가통수권자는 일반인보다 노화 진행 속도가 빠르며, 심지어 수명이 약 3년 단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대통령들에게는 ‘대통령병’으로 불리는 ‘대통령 직무 스트레스’라는 직업병이 있습니다.

리더의 주요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자기 관리’입니다.

부족한 시간, 쏟아지는 업무, 중첩된 스트레스 속에서,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미주중앙일보, 2015-12-16, 「서방 대통령·총리, 낙선자보다 3년 일찍 세상 뜬다」.

3. 신동아, 2009년 01월호, 「세종의 사인(死因)은 스트레스, 실명(失明)은 강직성 척추염 때문」.

4. 코메디닷컴, 2009-01-20, 「대통령 효과? 오바마 벌써 흰머리」.

5. 해럴드경제, 2016-12-24, 「개도 스트레스 받으면 ‘오바마’처럼 새치가 난다」.

6. SBS 뉴스, 2016-11-22, 「[취재파일] 대통령의 주름과 노화 속도」.


(사진 : SBS 뉴스)


Posted by 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