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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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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1.13 천둥벌거숭이에게 고함
  2. 2014.12.09 세종의 소통 철학 (세종 유통분2)

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 선생은 서른 아홉 되던 1800년에 원자인 정조가 승하하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여유당의 편액을 걸게 된다. 그의 문집인 <여유당기與猶堂記>에서, 당호인 여유당에 담긴 선생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략- 나(정약용)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智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여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에 기쁘게 느껴지기만 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에 꺼림직하여 불쾌하게 되면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속 밖에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이미 장성하여서는 과거(科擧)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 몰랐고, 나이 30이 되어서는 지난 일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善)을 끝없이 좋아하였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아, 이것이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내가 노자(老子)의 말을 보건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

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이 뜻을 얻은 지 6∼7년이 되는데, 이것을 당(堂)에 편액으로 달려고 했다가, 이윽고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 초천(苕川)에 돌아와서야 문미(門楣)에 써서 붙이고, 아울러 이름 붙인 까닭을 적어서 어린아이들에게 보인다."

[… 余病余自知之。勇而無謀。樂善而不知擇。任情直行。弗疑弗懼。事可以已。而苟於心有欣動也則不已之。無可欲而苟於心有礙滯不快也則必不得已之。是故方幼眇時。嘗馳騖方外而不疑也。旣壯陷於科擧而不顧也。旣立深陳旣往之悔而不懼也。是故樂善無厭而負謗獨多。嗟呼。其亦命也。有性焉。余又何敢言命哉。余觀老子之言曰與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鄰。嗟乎。之二語。非所以藥吾病乎。夫冬涉川者。寒螫切骨。非甚不得已。弗爲也。畏四鄰者。候察逼身。雖甚不得已。… 余之得斯義且六七年。欲以顏其堂。旣而思之。且已之。及歸苕川。始爲書貼于楣。竝記其所以名。以示兒輩。]

(출처 : 다산시문집 제13권 여유당기與猶堂記, 韓國古典綜合DB, 한국고전번역원) 


이처럼 정약용 선생은 차가운 세상에 놓인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신에게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는 의지를 불어넣으며, 집에 여유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랬건만 그는 이듬해에,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조심하고 관조하고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었나보다.


여與(豫)와 유猶 개념의 원조인 노자의 원문이 궁금했다.

<도덕경道德經>을 찾아보니, 노자와 정약용 선생 간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출처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소나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조심조심이 아니라, 내면이 묵직한 가만가만의 이미지가 노자의 말씀에서 연상된다.

노자와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여與(豫)와 유 개념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道에 이른 사람의 행태인 노자의 여와 유,  이에 가까이 가기 위한 성찰이 정약용 선생의 여와 유가 아니었을까?

내면이 잘 닦인 사람은 납작 엎드려도 비굴하지 않다.

Posted by 오채원

지난달에 세종사랑방에서 강연해주신 안상수 PaTI 날개님도 인용했던 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첫 장 첫 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도를 도라고 당연시하지 말라는 노자처럼,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함으로 두지 않는 사람,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철학자'라고 부른다(학자, 기업가, 디자이너 등도 그러하다.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우리는 그를 학자라고, 기업가라고,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세종은 의심대마왕이고 철학자이다.

오늘 노자, 장자 전문 철학자인 최진석 교수님(서강대학교 철학과)이 오셔서 세종실록에서 노장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세종 7/1/17)

주자소(鑄字所)에서 인쇄한 장자(莊子)를 (세종께서)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종 14/3/19) 

불교는 유도(儒道)와 더불어 양립(兩立)하여 그 내력이 이미 오래지만, 도가에서 별을 제사하는 것은 더욱 그 옳고 그른 것을 알지 못하겠다. 도가(道家)가 별을 제사하는 사유(事由)를 경(지신사 안숭선)이 옛일을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내가 장차 대신들에게 의논하려고 한다.”


(세종 7/7/15) 

도교와 불교는 모두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런데 도사의 말은 더욱 허황하다. 우리나라의 소격전(昭格殿)의 일은 또한 도교이다. 그러나 별[]에게 제사하는 것은 큰일이므로 역대로 전해 와서 지금까지 폐하지 않았다.”

 

이처럼 세종은 의구심은 갖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한다.

그는 도교 뿐 아니라 풍수지리, 수학 등 당시 주류 학문이 아닌 분야에서도 의구심을 품고 공부하고자 했다.

 

(세종 12/10/23) 

임금이 계몽산(啓蒙算 계몽산법;수학)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하였다.

 

정인지의 도움을 받아 수학 공부를 한 것처럼, 세종은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소위 '배운 사람'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독단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세종은 다른 이들과 함께 소통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고 생각의 폭을 넓혔다

'여민가의(與民可矣백성과 함께하면 된다)'가 바로 세종의 소통 철학의 핵심이다.


(세종 12/12/20) 

경상도 감사가 아뢰기를, “토지를 다시 측량한 뒤 새로 개간한 밭을 알아내기가 매우 곤란하오니, 오래전부터 경작하던 토지의 예에 따라 세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째서 알아내지 못한단 말이냐. 만일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백성과 같이 하면 될 것이니[與民可矣], 이렇게 하도록 호조에 이르라.”

 

장자(莊子)》에 나오는 제나라 환공과 수레바퀴 깎는 노인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고인지조백(古人之糟魄)'. 

장자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는 술지게미, 즉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진석 교수님은 '성현의 말씀은 과 같다'고 도발하셨다.

현장에서 내 몸을 부딪혀 살아있는 진실을 구하고, 전문가의 독단을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성현의 말씀이 배설물로 그치지 않고, 거름으로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것이 '현대 철학자 세종'에게서의 울림이다(최진석 교수님의 EBS 강의 제목 '현대 철학자 노자'에서 따옴).

Posted by 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