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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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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7에는 세종 9년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날 강의 내용에는 명나라 조공 및 사신의 횡포, 양녕대군으로 인한 논쟁, 황희의 사위인 서달徐達의 살인 및 그 조작 등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집현전응교集賢殿應敎 권채權採의 잔혹한 행적과 관련된 세종의 언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권채는 "시문詩文을 다 잘하여 문형文衡을 받아 왔다"(세종 20년 5월 10일)고 평가를 받을 만큼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정부인은 심한 투기로 첩인 덕금을 동물 이하로 학대했고, 권채는 이를 알면서방관했지요. 

거의 시체에 가까운 덕금의 모습이 우연히 발각되었고, 그 처리 문제로 인해 논쟁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세종이 말씀하시지요.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니,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대단히 상심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일 경우야 어떻겠는가[人君之職, 代天理物, 物不得其所, 尙且痛心, 況人乎].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良民과 천인賤人을 구별해 다스릴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 9년 8월 29일) 


실록공감_공유_세종_9년_오채원연구소공감.pdf


Posted by 오채원

지난 5/31에 강의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세종 6년, 한해를 정리하며, 저는 열쇠말로 '자신自新'을 제시하였습니다.

'자신'은 '스스로 새로워짐'을 가리키는 유가儒家의 주요 개념으로, 주희朱熹(주자)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모두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자신'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덕목입니다.

스스로를 혁신시켜 나가야 할 뿐 아니라 조직원, 아랫사람들에게도 '어제와 다른 참된 나'로 살아가게끔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오랑캐'로 불리며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야인(여진족), 그리고 '트러블 메이커' 양녕대군이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기대했던 세종.

이러한 그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실록공감_공유_세종_6년_오채원연구소공감.pdf



Posted by 오채원
세자(양녕대군)가 주상(主上, 태종)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주상께서 이를 보고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적에 편안히 놀기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여, 거동(擧動)이 절도가 없었다. 지금 백성의 임금이 되어서도 백성들의 바람[民望]에 합하지 못하니, 마음속에 스스로 부끄럽다. 네가 비록 나이는 적으나, 그래도 원자(元子)이다. 언어(言語) 거동(擧動)이 어찌하여 절도가 없느냐? 서연관(書筵官)이 일찍이 가르치지 않더냐?”
하니, 세자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였다.
(태종 5/10/21, 양녕 만 11세 때)

서연관(書筵官)에게 명하여 세자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문학(文學) 정안지(鄭安止)·사경(司經) 조말생(趙末生)에게 이르기를,
“이제부터 서연(書筵)에 입직(入直)하는 관원은 세자가 식사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 있을 때에도 좌우를 떠나지 말고, 장난을 일체 금하여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도록 하라. 세자가 만약 듣지 아니하거든 곧 와서 계달(啓達)하라.”
하고, 또 시관(侍官)을 불러 꾸짖었다.
“요즘 듣건대, 세자가 공부하기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은 너희들의 소치이다. 세자가 만약 다시 공부에 힘쓰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들을 죄줄 것이다.”
(태종 6/4/18)

태종은 젊은 시절에 바깥으로만 나돌고, 자신의 수양은 커녕 가정 교육에도 신경 쓰지 않았나보다.

이제 정신 차리고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려 하나, 아이는 엄격한 아버지를 무서워하기만 한다.

요즘 말로, 아이의 교육에 필요한 것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고 한다.

아이를 부인, 학교, 과외 선생님에게 맡기고, 자기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가정 교육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아빠의 보듬어줌이 아닐까?

자신이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을 때에 아이의 자존감은 자리잡고, 세상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

Posted by 오채원